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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세 아나운서 인물 정보 프로필

by 3bemedia 2024. 5. 16.

 

   박종세는 대한민국 언론계와 광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아나운서로 시작하여 방송 경영자, 기업인으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미디어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2. 가족 배경과 성장 과정
   박종세는 1935년 8월 28일, 경기도 장단군 진남면(현재의 파주시 장단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박교준은 한문, 일본어, 측량기술 등을 익혀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했던 인물이다. 박종진은 6남매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형제들과 함께 성장했다.



   박종세는 1948년 장단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하여 경복중학교에 입학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그는 경복중학교 3학년이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학업을 이어갔던 박종진은 1955년 경복고등학교를 30회로 졸업하고, 같은 해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에 입학하여 1959년 졸업했다.



3. 언론인으로서의 발자취
   박종세는 1956년 서울대학교 2학년 재학 중 서울중앙방송국(한국방송공사의 전신)에 입사하여 아나운서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을 때 그는 혁명공약을 발표하는 등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활약했다.

   1964년, 박종세는 서울중앙방송국을 떠나 새로 개국한 동양방송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양방송에서 그는 아나운서 실장, 방송위원, 방송주간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1980년에는 '내가 본 전두환 대통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땡전뉴스성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해 언론통폐합이 단행되면서 동양방송은 폐국되었고, 박종세는 '동양방송 고별방송'을 마지막으로 진행했다.



   동양방송 폐국 후 박종세는 한국방송공사로 돌아와 1981년 11월까지 방송위원실 주간을 맡았다. 그의 언론인으로서의 경력은 우리나라 방송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고 볼 수 있다.

4. 기업인으로의 전환
   1980년대 초, 박종세는 해태그룹의 해태기획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1983년 7월에는 해태기획의 상호를 'KORAD'로 바꾸고 1994년 12월까지 대표이사 사장과 부회장을 역임했다. 이 시기 박종세는 1982년 초대 해태 타이거즈 단장을 지내는 등 스포츠 마케팅에도 힘을 쏟았다.



   박종세는 1995년 1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광고회사 '아시아컴'의 회장직을 수행하며 국내 광고 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해태그룹과 아시아컴에서의 활동을 통해 박종진은 우리나라 광고 산업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5. 학문적 성취와 모교에 대한 애정
   바쁜 일정 속에서도 박종진은 학문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1987년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전공하며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는 그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가로 성장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박종세는 모교인 경복고등학교에도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제13대 경복고등학교 총동창회장을 맡아 모교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이사로 활동하며 모교와의 유대 관계를 이어갔다.

6. 다양한 분야에서의 사회 활동
   박종세는 언론계와 광고계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한국아나운서클럽 회장, 대한역도연맹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 각계각층과 소통했다.



   또한 박종세는 청운로터리클럽 회장, 형애장학회 이사, 삼육재활원 이사 등 사회 공헌 활동에도 앞장섰다. 이는 그가 단순히 개인의 성공을 넘어 사회에 기여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